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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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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창호는 1969년 예천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산악인이다. 서울시립대학교 산악부 활동을 시작으로 파키스탄 탐험을 통해 국제적인 등반가로 이름을 알렸으며, 2006년부터 2013년까지 14좌를 무산소 등반에 성공했다. 2017년에는 강가푸르나 등반으로 황금 피켈상 명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2018년 구르자 히말 등반 중 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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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산악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3년 4월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의 김창호
2013년 4월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의 김창호
이름김창호
국적대한민국
출생일1969년 9월 15일
출생지예천군 예천읍
사망일2018년 10월 11일 (49세)
사망 장소구르자 히말, 네팔
교육서울대학교
웹사이트김창호 관련 기사
등반 경력
등반 유형알파인 등반
최고 등급알 수 없음
주요 업적무산소 14좌 최단 시간 등반
첫 등반바투라 II (7,762m, 2008년), 힘중 (7140m, 2012년)
주요 등반강가푸르나 남벽 (7,455m, 2016년)

2. 초기 생애 및 교육

김창호는 1969년 9월 15일 예천군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교내 핸드볼 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도 단위 체육대회에도 출전했다.[17][5]

1988년 서울시립대학교에 국제통상학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잦은 해외 등반 원정 참여로 인해 2013년에야 졸업했다.[6] 김창호는 학부 과정을 마치기 위해 인문학을 더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6] 결국 경영학 학위를 취득했다.[7]

3. 등반 경력

김창호는 서울시립대학교 산악부에서 등반 경력을 시작하여, 카라코람산맥, 힌두쿠시산맥, 파미르 고원 등 파키스탄 북부 지역을 탐험하며 국제적인 등반가로 성장했다.[14] 2005년 낭가파르바트 루팔 벽 등반을 계기로 14개의 8천 미터 봉 등반에 도전, 2006년부터 2013년까지 7년 10개월 만에 무산소 등정하여 당시 최단 기간 기록을 세웠다.[16] (이후 니르말 푸르자가 2019년 10월 산소통을 사용해 이 기록을 경신했다.)[16]

그는 낭가파르바트 루팔 벽 신 루트(2005년, 8,125m), 파키스탄 야신 계곡의 시카리(2001년, 5,928m), 아란두 계곡의 카체 브랑사(2001년, 5,560m) 등 여러 신 루트와 초등을 개척했다.[16]

3. 1. 대학 산악부 시절 (1988–2000)

김창호는 서울시립대학교 산악부에 가입한 후, 등반 및 등산 활동을 크게 늘렸다.[8] 1990년대에 이르러 5.12 등급의 암벽 등반 루트를 등반했으며,[9] 서울시립대학교 산악부에서 조직한 두 차례의 카라코람 원정에 참여했다. 그레이트 트랑고 (6,286m, 1993년)와 가셔브룸 IV (7,925m, 1996년) 원정에서 김창호는 선두 등반자 중 한 명으로, 대담하고 심지어 무모하기까지 한 등반 방식으로 명성을 얻었다. 가셔브룸 IV 동벽의 신 루트에서 김창호와 그의 파트너는 7,450m까지 도달했다.[10][11] 확보물을 설치할 크랙이 없는 바위 벽에 막혀 김창호는 파트너에게 "만약 내가 떨어지면 로프를 놓아!"라고 말했다.[12] 김창호는 90년대의 이 순간들과 다른 순간들을 "산에서 큰 성과만을 추구했던 미성숙한 젊은 시절"이라고 언급했다.[13]

3. 2. 파키스탄 탐험 (2000–2004)

김창호는 2000년 카라코람산맥에서 단독 탐험을 수행하면서 국제적인 등반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파키스탄 북부의 카라코람산맥, 힌두쿠시산맥, 파미르 고원을 탐사했다. 그는 중대형 규모의 빙하를 여러 개 횡단하고, 수많은 고개를 넘었으며, 등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봉우리들을 조사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는 몇몇 경우에 오지에 있는 빙하의 가장 깊숙한 곳을 처음으로 밟았거나, 19세기 서양 탐험가에 이어 두 번째로 발을 디뎠다.[14] 그는 봉우리, 고개, 빙하의 현지 이름을 수집하고, 이를 해당 지역의 여러 지도와 꼼꼼하게 비교했다. 김창호는 서울에 본사를 둔 ''월간 산''에 자신의 발견과 경험을 발표했으며, 미등반 봉우리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여 한국 산악인 3명에 의한 마칼루 히말의 암푸 I봉(6,740m) 초등반을 이끌었다.[14]

김창호의 세심함을 보여주는 예로 2003년 힌두라지산맥의 치안타르 계곡에서 초등반한 6,000미터급 봉우리 두 개의 이름을 지어야 했던 경우가 있다. 첫 번째 봉우리는 츠네오 미야모리의 2001년 지도에 "수지 사르 SW"로 표기되어 있으며, 인근의 6,177m 봉우리 "수지 사르 NE"와 짝을 이룬다. 김창호는 두 봉우리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김창호는 "사르"가 와키어로 봉우리를 의미하지만, 시나어는 별개의 봉우리를 "코르"라고 부르는 현지 방언이라는 것을 관찰했다. 각 봉우리가 아타르 사르와 하이즈 가에 가깝게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김창호는 정보를 얻은 현지 주민과 함께 "아타르 코르"(6,189m)와 "하이즈 코르"(6,105m)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15]

그의 기록에는 책, 일기, 필름 롤, 2.4테라바이트의 디지털 데이터베이스가 포함되었다.[9] 김창호의 등반 파트너이자 전기 작가인 오영훈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내가 알기로는 파키스탄 북부 산맥에서 그 누구도 이토록 방대한 규모와 꼼꼼한 방식으로 지리적 탐험을 시도한 적이 없으며,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이 지역의 산악 지리 정보를 이처럼 포괄적이고 상세하게 축적하지 못했다."[14] 심지어 그가 사망했을 당시에도, 김창호는 향후 5년간 이 지역의 새로운 등반 루트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세워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14]

그의 파키스탄 탐험의 고난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방식으로 등반에 대한 그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그 여정은 매우 고되었는데, 그는 여러 번 크레바스에 빠졌고, 발목을 삐었으며, 지프차가 전복되었고, 여러 날 동안 굶주렸으며, 황폐함과 환각에 시달렸고, 강도의 공격을 받았으며,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은 목동, 농부, 주부, 마을 아이들이었다. 김창호는 산에 대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는지를 깨닫고, 관계와 감사의 중요성을 배우면서, 점차 현지 지식과 지혜를 얻고 조화를 이루는 것을 외딴 지역에서 등반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3. 3. 고산 등반 (2005–2018)

2005년, 김창호는 낭가파르바트 루팔 벽을 90일간 등반하여 이현조와 함께 정상에 올랐다. 이현조는 베이스캠프에 무전으로 "형제여! 네가 함께 있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고, 김창호는 이 말에 감명을 받았다. 하산 후 김창호는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반성하며 "내가 오른 것은 가상의 낭가파르바트였다. ... 정상에 서는 것은 팀원과 함께 살아 돌아올 때만 의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이후 김창호는 14개의 8천 미터 봉 등반을 시작했다. 부산산악연맹의 14좌 프로젝트 리더인 홍보성은 김창호의 등반 기술과 경험을 높이 평가하여, 소규모 팀을 꾸려 셰르파나 산소통의 도움 없이 등반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년 4개월 만에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김창호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7년 10개월 동안 14좌를 모두 무산소로 등정하여 당시 최단 기간 기록을 세웠다. (니르말 푸르자가 2019년 10월 산소통을 사용해 이 기록을 경신했다.)

김창호는 낭가파르바트 루팔 벽 신 루트(2005년, 8,125m) 외에도 파키스탄 야신 계곡의 시카리(5,928m, 2001), 아란두 계곡의 카체 브랑사(5,560m, 2001) 등 여러 신 루트와 초등을 개척했다.

3. 3. 1. 주요 등반 기록

김창호는 2005년 낭가파르바트 루팔 벽을 90일 동안 포위 공격 방식으로 등반하여 이현조와 함께 정상에 올랐다.[16] 이후 14개의 8천 미터 봉 등반을 시작, 부산산악연맹의 14좌 프로젝트 리더 홍보성의 지원을 받아 셰르파나 산소통 없이 소규모 팀으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년 4개월 만에 프로젝트를 완료했다.[16]

2006년부터 2013년까지 7년 10개월 동안 14좌를 모두 무산소로 등정했다. (니르말 푸르자가 2019년 10월 산소통을 사용해 이 기록을 경신했다.)[16]

김창호는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에서 고난도 신 루트와 초등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주요 등반으로는 파키스탄 야신 계곡의 시카리(2001년, 5,928m), 아란두 계곡의 카체 브랑사(2001년, 5,560m), 낭가파르바트 루팔 벽 신 루트(2005년, 8,125m), 네팔 강가푸르나 남벽(2016년, 7,455m) 및 서벽 남벽(2016년, 7,140m), 인도 파푸라 남벽(2017년, 6,451m) 등이 있다.[16] 강가푸르나 등반으로 2017년 황금 피켈상에서 한국인 최초로 "명예상"을 받았다.[16]

그의 초등 기록에는 파키스탄 바투라 II(7,762m)와 네팔 힘중(7,140m)에서 동료들과 함께 등정한 것, 파키스탄 루프가르 패스 인근 무명봉(6,006m), 차푸르산 계곡의 델리 상이 사르(6,225m), 치안타르 산맥의 아타르 코르(6,189m), 하이즈 코르(6,105m), 박마 브라크(6,150m, 북마 봉우리) 단독 등반이 있다.[17]

4. 사망 (2018)

2018년, 김창호는 구르자 히말의 미답봉 남벽 3,800m를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할 계획이었다. 이 등반은 2016년부터 시작된 "코리안 웨이 프로젝트"의 일부로, 외부 도움 없이 새로운 루트로 산을 오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김창호는 등반 목적지 선정 기준으로 탐험 가치, 현지 문화에서의 산의 중요성, 계획된 루트의 자연스러움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는 "공존의 등산"이라는 그의 등산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18]

김창호 팀의 시신은 구르자 히말 베이스캠프 아래 절벽 주변 500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사고 원인은 모두 잠든 사이 발생한 눈사태로 추정된다. 구글 어스 이미지는 구르자 히말 정상 서쪽 5900m 지점에 거대한 세락(얼음 덩어리)이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 세락이 떨어져 나가 베이스캠프를 덮쳤을 것으로 추정된다.[19] 사고는 김창호의 일지가 10월 10일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것을 토대로 10월 10일 저녁과 10월 11일 아침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조

[1] 뉴스 Kim scales 14 Himalaya peaks without oxygen tanks https://www.koreatim[...] 2018-10-13
[2] 웹사이트 Nepal storm kills climbers on Himalayan peak Gurja https://www.bbc.co.u[...] 2018-10-13
[3] 웹사이트 Korean Everest Sea to Summit marred by tragedy https://www.thebmc.c[...] British Mountaineering Council 2018-10-13
[4] 뉴스 Snowstorm Kills at Least 8 Climbers in Nepal https://www.nytimes.[...] 2018-10-13
[5] 웹사이트 예천·영주 학교동창 등이 말하는 故 김창호 원정대장 https://m.yeongnam.c[...] 2020-02-24
[6] 웹사이트 25년만에 서울시립대 졸업하는 김창호씨 "인간의 힘만으로 에베레스트 도전" http://m.kmib.co.kr/[...] 2020-02-29
[7] 간행물 고산자, 산을 오르다 2005-09-01
[8] 간행물 Chang-ho KIM – Korean Alpine Federation https://asian-alpine[...] 2020-02-29
[9] 서적 탐사가, 비평가, 구도자 김창호 울주세계산악영화제
[10] 웹사이트 [김창호 8,000m급 14좌 무산소 완등 특집 {{!}} 등반역정] 탄탄한 등반 경험이 8,000m 14좌 무산소 완등 이끌다 http://san.chosun.co[...] 2020-02-23
[11] 문서 According to Lee Gye-Nam, the leader of the University of Seoul Gasherbrum IV Expedition in 1996, 7,450 m is the best measure of the height Kim reached. While Kim stated in the interview with Monthly Magazine Mountain in 2013 that he climbed another 20 m from 7,450 m, Lee said "the pitch was short and they were unable to proceed far from the belay point."
[12] 간행물 이 클라이머의 삶: 전쟁도 막지 못한 히말라야 떠돌이 김창호씨 2001-12-01
[13] 간행물 파키스탄 히말라야 처녀봉 등정기<중>, 힌두라지 치안타르 산군의 아타르코르 & 하이즈코르 초등기 2004-01-01
[14] 간행물 Mountaineering of Coexistence: Short-lived Vision of the Korean legendary mountaineer Kim Chang-Ho https://asian-alpine[...] 2020-02-29
[15] 웹사이트 파키스탄 히말라야 처녀봉 등정기 (중) http://san.chosun.co[...] 2020-02-29
[16] 웹사이트 Piolets d'Or 2017: Two ascents and two special mentions https://www.pioletsd[...] 2021-12-10
[17] 간행물 Chang-ho KIM – Korean Alpine Federation https://asian-alpine[...] 2021-12-10
[18] 웹사이트 네팔 구르자히말에서 김창호 등 9명 사상 http://www.mountainj[...] 2020-06-05
[19] 웹사이트 구르자히말 사고 원인 눈사태 후폭풍 가능성 크다 http://www.mountainj[...]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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